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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세, 서약과 진실성의 문제(마 5:33-37)

   맹세는 이 세상에 거짓이 존재함을 알리는 것이다. 맹세는 거짓을 조장하기도 한다. 구약의 율법은 맹세를 통해 거짓말을 배척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맹세 금지를 통해 거짓말을 봉쇄한다(너희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마 5:34). 그 분은 거짓말의 도피처인 맹세 속에 거짓말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하셨다. 거짓말의 대피소가 되었다.

예수님은 "예"와 "아니오"만을 진실에 근거해 하라고 하셨다. 이 때 그 근거는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말"인 까닭이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은 따로 맹세해서는 안 된다! 맹세는 다른 모든 말을 의심의 암흑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한편, 맹세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다시금 진실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서약에 하나님을 끌어댄다 해도 그 서약의 진실성은 절대 입증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예수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뜻에만 매인다. 그러므로 맹세의 성격을 띤 서약, 충성 서약은 처음부터 극도로 위험하다. 우리는 지신의 미래는 물론 서약으로 우리를 속박하는 자의 미래도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께 용서받은 죄를 숨기지 않을 때만 철저히 진실은 존재할 수 있다. 제자의 진실은 철저히 예수를 따르는 것에만 근거를 둔다. 우리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진리, 곧 십자가만이 우리를 참되게 한다. 십자가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진실의 회복을 위한 율법의 맹세가 필요하지 않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완전한 진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 진리가 아닌 것은 사람에게도 진리가 아니다. 

     ### 예와 아니오의 말은 다른 말들도 포함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진실성의 바탕 위에 있다. 완벽한 100% 진실의 말이 결여된 우리로서는, 그래서 날마다 십자가의 사죄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만 지속적으로 진실의 영역으로 다가갈 수 있다. 진실로 나아가는 부단한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