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실체 신앙

행복과 불행의 근원(시 1:1-2:6)


시 1:1-2: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시편 1:1-2:6의 말씀은 시편 150편 전체의 서론에 상당하기도 하며, 동시에 제1권(1-41편)의 제목이다. 즉 시편 전체는 어떠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으며, 동시에 어떠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는지를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하면, 시편 전체는 인간이 어떻게 살았을 때, 그들이 행복하였으며, 인간이 어떻게 살았을 때, 그들이 불행하였는지를 자신의 삶의 경험에 근거하여 고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의 저편에는 항상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편 전체는 인간이 자신의 경험 저편에서 자신과 관계를 맺고 계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증언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편, 잠언, 전도서, 그리고 욥기는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계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증언과 시편 기자들의 삶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히브리 성서의 신학은 우리의 삶의 경험 넘어 살아 계신 실체(Reality)에 대한 증언, 곧 경험의 실체에 대한 신학(Theology of Reality of Experience)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시편 1편은 이를 어떻게 증언하고 있는가?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 그 사람은 타락한 인간과 벗하여 사는 사람이 아니다. 福받을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타락하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기획하고 생각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惡하기 때문이다(창 3:23; 8:21). 따라서 나 자신을 비롯하여 본질적으로 악한 인간들과 벗하여 살다 보면, 그들의 꾀를 따르게 되거나, 협조하게 되어 결국 자기 자신도 악인의 행위를 따라서 행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나약 함이며, 동시에 죄악 된 본성이다. 그래서 성경은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권면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아무런 인간 관계도 맺지 말라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시인은 “악인의 꾀(계획, 음모, 수술)를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참조 전 7:29). 악인의 꾀를 따르게 되면, 결과적으로 죄인이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참조. 요 1:1-5; 요일 1:1-4)를 주야로 생각하면서, 그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고, 복도 주어진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으로(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인은 - 아니 시편 전체는 – 우리의 행복의 근원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에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 곧 행복이 무엇인가? 시인이 경험한 복, 곧 행복은 “3 그는(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이란, 삶의 모든 일들이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잘 진행되는 것이다. 시인이 경험한 복은 물질의 풍요나, 세상의 권세나, 명예가 아니다. 시인이 경험한 복음 오히려 삶의 평강(평탄함)이다. 즉, 복 받은 사람은 마음 고생을 하지 않고, 삶의 모든 일들이 어려움없이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는 뜻이다. 독일말로 “Alles in Ordnung”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강의 복(삶의 순탄함)은 사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처음부터 주시고자 했던 복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항상 “보시기에 좋았다”고 만족하셨기 때문이다(창 1:10). 그런데 “보시기에 좋았다”는 뜻은, 만물이 창조의 의지대로 잘 운행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에게 주신 창조의 복은 ‘만사가 형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꾀를 내었다. 곧, 자신도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한 것이다. 그후 타락한 인간에게는 ‘평강’(순탄함)이 사라졌다.

그래서 시인은 인생을 살아본 결과, 복이란, 삶의 우환질고(憂患疾苦) 없이 평안한 삶을 누리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복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와 상응하게 전도서 기자도,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율법/말씀)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증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 나라들은(하나님을 모르는 나라들/사람들은) 여전히 악인들처럼 “헛된 일을 꾸민다”(시 2:1) 즉 “여호와와 기름부음을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시 2:2)하니 이 얼마나 악한 짓인가?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율법(하나님의 언약)에서 벗어나 제 멋대로 살고자 한다(시 2:3) 그들은 야훼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언약(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을 파기하고, 이방 神을 섬기며, 자기 멋대로 살고자 한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을 끝까지 성실히 실행하실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산, 시온에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세상을 통치하실 것이다(신 2:5). 그러므로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만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그의 삶의 모든 일들이 형통해 진다는 것을 시인은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