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실체 신앙

야훼, 주는 나의 방패(시 3:1-7)
(시 3:1-7) “1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2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시 3:1-7) “1 A psalm of David. When he fled from his son Absalom. O LORD, how many are my foes! How many rise up against me! 2 Many are saying of me, "God will not deliver him." Selah 3 But you are a shield around me, O LORD; you bestow glory on me and lift up my head. 4 To the LORD I cry aloud, and he answers me from his holy hill. Selah 5 I lie down and sleep; I wake again, because the LORD sustains me. 6 I will not fear the tens of thousands drawn up against me on every side. 7 Arise, O LORD! Deliver me, O my God! Strike all my enemies on the jaw; break the teeth of the wicked.”

시편 편집자는 시편 3편의 정황을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로 설명한다. 사무엘 하 15장에서 기술되어 있듯이, 다윗은 자기 아들의 반역으로 인한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밤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황급히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밤새 걸어서 요단강 건너 바후림에서 밤을 지샌다. 일국의 왕이 남도 아닌 자기 자식, 압살롬의 반역으로부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맨발로 야밤도주를 하여 야지에서 한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이한다. 이때의 다윗, 왕의 심경이 어떠했을까? 
이전에 왕인 자신을 둘러 싸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은 모두 대적자로 변하였다. 이러한 정황에 놀라서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대적하는 무리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나를 치려는 자들이 이토록 악랄한 줄 예전에 몰랐다’(1절)고 탄식한다. 그렇다 이 세상의 인간관계라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 모든 일이 잘 되어 가고,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있을 때는, 떡 고물 떨어지는 것 먹으려고, 식솔들, 간신들이 파리 떼처럼 몰려오지만, 권력의 권자에서 내려오면, 하루아침에 그 식솔들이 모두 적으로 변하는 것, 이것 정치 권력의 현주소이다. 그래서 권력을 잡은 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의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정치적 대세가 다윗 왕에게서,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기울자, 이전에 다윗의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에게 붙은 것이다. 아마 이러한 다윗의 심경을 정치 권세를 누려본 사람을 실감할 것이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많아도, 정승이 죽으면 조문객이 없다”는 우리나라의 속담이 정치 권력의 이면을 잘 표현해 준다.
이러한 정치적 정황 속에서 다윗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대적하여,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시 2:2-3) 라는 말씀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짖을 지금 바로 자기 아들 압살롬이 행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도 행하였음을 깨닫는다. 좋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서로 죽이는 정치적 판에서는 자신의 위치와 권세력에 따라서 대적자도 생기고, 소위 동지도 생기지만, 그러나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다윗]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2절)는 저주이다. 이러한 저주는 다윗에게는 정치적 상황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때에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의지한다. 적어도 하나님은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면, 자신을 받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아간다. 이와 유사한 사건을 우리는 예수님의 “돌아온 탕자에 관한 비유”(눅 15:11-32)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려도, 죄 많은 나를 받아 주실 분은 우리 주님밖에 안 계시다. 이렇게 생각하고 다윗은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3절) 이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 주님을 자신의 방패이시며, 자신을 부끄러움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주실 분으로 믿고 드리는 기도이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이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에서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를 드린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4절). 
이와 같은 심경으로,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리고 밤새껏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맨발로 걸어서 요단 강을 건어 바후림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깨어 아침이 되니 지난 한 밤이 폭풍을 만난 것 같았고, 그 불안, 초조, 절망과 낙심 속에서 잠시 평안한 잠을 잘 수 있었던 순간이 참으로 평안한 시간이었음 감사한다: “내가 누워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5절) 각종 근심 걱정으로 잠을 자지 못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깊이 이해할 것이다. 병고로 밤새껏 잠을 못 자고 신음으로 지새다가 새벽 역에 조금 눈을 붙이고 일어날 때, 그 잠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낄 것이다. 그래서 시편의 어느 시인은,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고백하였던 것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잠을 자고 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들어 주실 것을 믿고서, 다음 같은 확신 혹은 믿음을 토로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7절). 정치적 상황은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예루살렘 궁전을 떠나 맨발로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하던 어제 밤과 전혀 다르게 다윗은 믿음이 새겼고, 오히려 자신의 승리를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8절)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윗 왕의 마음이 변하게 되었다.
이러한 다윗 왕의 심경의 변화 혹은 낙심과 좌절이 어떻게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기도로 변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야훼,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 11:28-29) 말씀하셨듯이, 다윗, 왕은 환난 날에 야훼, 주님을 찾고, 주님께서 자신을 쫓는 대적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방패가 되어 주실 것들 간구한 것이다. 빗발처럼 쏟아지는 적의 온갖 화살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방패, 그것도, 세상 권세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일가친척, 친지도 동문도 아니다. 나의 방패는 오직 주님이시다. 이러한 주님을 경험하고 다윗은 오늘의 시(詩) 3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