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실체 신앙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습니다. (13)

 

( 13:1-6)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 13:1-6) “1 For the director of music. A psalm of David. How long, O LORD? Will you forget me forever? How long will you hide your face from me? 2 How long must I wrestle with my thoughts and every day have sorrow in my heart? How long will my enemy triumph over me? 3 Look on me and answer, O LORD my God. Give light to my eyes, or I will sleep in death; 4 my enemy will say, "I have overcome him," and my foes will rejoice when I fall. 5 But I trust in your unfailing love; my heart rejoices in your salvation. 6 I will sing to the LORD, for he has been good to me.” (NIV)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1) 1절을 읽는 순간, 독자들에게 순간 곧바로 떠 오르는 비슷한 절규가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외치신 말씀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15:34, 인용 시 22:1) 시인은 자신의 긴박한 절규를 어느 때까지이니까?”로 표현하였다. 얼마나 긴박하였는지, 시인은 6절밖에 안 되는 짧은 시에서 4번씩 어느 때까지이니까?”를 반복하고 있으며, 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표현: “잊으셨나이까?”, “얼굴을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습니까?” (1)까지 포함하면, 무려 6번씩 반복한다. 이렇게 동일한 의미의 말을 계속해서 반복한다는 것은, 시인이 긴급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고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동시에 어느 때까지니이까?”를 계속해서 반복하여 부르짖는다는 것은, 시인의 상황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는지도 알 수 있다. 시인의 어려운 상항을 시인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습니다”(3)는 말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동시에 시인의 상황이 어느 정도 열악한 상황에 놓였는지도 표현해 주는 말이다. 한 마디로 지금 시인은 죽을 지경에 처해 있다. 죽고 싶은 시인의 심정, 차라리 죽은 것이 낫다고 느껴질 정동의 극단적 상황에 봉착하였기에 시인은 아주 간절히 그리고 긴급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구원의 긴급성과 극한 상황을 어느 때까지니이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간구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는 것은, 시인이 하나님의 도움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지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혹은 어떤 문제로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원수들”; “나의 대적들”(2,4) 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야말로 작정하고 시인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악한 자들이 시인 주위에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은 실제로 지금 그 원수들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 “(2b);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시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4)

그러나 시인에게 있어서는 자기 원수들이 자신을 괴롭히고, 죽이려 하는 것은 두번째 문제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문제, 곧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지금까지 시인이 의지하고 살아 계심을 믿어왔던 야훼, 하나님의 구원행위(salvation act)이다. 바꾸어 말하면, 시인에게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하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회의가 생긴 것이다. 평생 야훼,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적어도 하나님만은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알고 계실 텐데, 야훼 하나님은 악인들의 악행을 그냥 보고만 계실 분이 아닌데, 그런데 원수들의 악행은 그치지 않고 더 기승을 부리고, 자신은 지금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하는 야훼,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being and act of God)에 대한 회의가 시인에게 생긴 것이다.

시인이 당면한 상황은 단지 그 당시 시인의 상황만은 아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온 성실한 그리스도들이 고난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주어지지 않을 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촌각(寸刻)을 다투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하는데, 어느 곳으로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보이지 않을 때, 예컨대, 어음부도 직전, 생명의 위기를 당하여 응급실에 있을 때, 악인들에게 쫓기고 있을 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야훼, 하나님께, “여호와여 어느때까지니이까?”라도 반문하게 된다. 시인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려볼 만큼 기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속될수록 야훼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주어질 희망보다는, 오히려 점점 더 그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음을 의식하였던 것이다. 시인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기다릴 인내를 모두 소진하였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지금의 두려운 심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여호와여!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지금)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이 그치지 않습니다.) …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합니다)”(3)

그러나 시인이 여기서 포기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정령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그야말로 시인이 지금 겪고 있는 죽음의 공포가 현실화된다. 그래서 시인은 에스더(Ester)처럼 죽으면 죽으리라신앙의 도박을 한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나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5) 지금까지 나는 오직 주의 사랑만 의지하여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여전히 그 사랑을 의지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분명 주의 구원을 받아 내 마음이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시인의 신앙이다. 극한 상황 속에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려운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희망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시인은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얻으면,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겠습니다”(6a)라고 기도한다. 왜냐하면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6b)

신앙은 평안할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순교의 형장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판명되듯이,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역경 속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11:1) 라고 하였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손에 잡히지 않아도, 저편에, 보이지 않는 곳에 주님이 계심을 믿고 그곳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다. 그때에 주님은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신다. 극한 상황 속에서 회의가 아니라, 오히려 나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포기하고, 전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