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실체 신앙

썩을 대로 썩은 세상에서 (15)

15:1-5 “1 [다윗의 시]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15:1-5 “1 A psalm of David. LORD, who may dwell in your sanctuary? Who may live on your holy hill? 2 He whose walk is blameless and who does what is righteous, who speaks the truth from his heart 3 and has no slander on his tongue, who does his neighbor no wrong and casts no slur on his fellowman, 4 who despises a vile man but honors those who fear the LORD, who keeps his oath even when it hurts, 5 who lends his money without usury and does not accept a bribe against the innocent. He who does these things will never be shaken.” (NIV)

 

시인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이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리이까?”(1) 반문(反問)한다. 시인의 이러한 질문은, 한편으로는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모두 죄인이라는 뜻이 잠재되어 있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죄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희망을 못 찾고, 혹시 주의 성산’, ‘주의 장막에서는 자기 삶을 인정받을 있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 희망이 담겨 있다. 그리고 셋째는 이 질문의 대상이 야훼, 하나님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엄격한 심판 대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하는 간청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시인의 질문은,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죄로 짖게 물들어 있는데, 이들이 어떻게 주의 장막’, ‘주의 성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는 회의에 찬 질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이 질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받은 궁극적인 축복은 주의 장막주의 성산이 아니겠습니까? 라는 고난 받은 의인의 낙심에 잠긴 희망의 간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셋째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시인을 비롯하여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부패한 인간이 어떻게 주의 장막’, 그리고 주의 성산에 거하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 모든 인간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길 간구하는 반문의 기도일 수도 있다.

이상 1-2절을 어떻게 해석하든, 하나님께 던진 시인의 질문 속에 드러난 것은, 인간(그리스도인) 삶은 이렇게는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3-5a)이어야 한다. 말을 요약하면, 남을 비방하지 않고, 헛된 소문을 전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되, 망령된 자는 멸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무노동으로 이익을 취하지 않고, 공의로 재판을 하는 자이다.  

그런데 시인이 생각한 참 인간(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삶은 바로 십계명의 제5-10계명에 내용상 상응한다. 왜냐하면 십계명의 제5-10계명은: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20:12-17)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내용은 동일하지 않지만, 인간과 재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있어서는 시인이 생각한 것과 십계명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물질의 관계 규정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동시에 시인이 생각한 참 인간(그리스도인)은 율법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5:17)로 시작하신, 산상(山上) 설교(4:18-7:29) 말씀과도 동일하다.

그런데 부자 청년에 관한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난 다음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19:25, 병행 막 10:26; 18:26) 반문한 적이 있었다. 그처럼 시인도 자신이 참 인간(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바를 언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러한 사람, 곧 율법을 온전히 지키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란 의구심(疑懼心)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시인은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이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리이까?”(1) 반문한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시인의 반문; “주의 장막,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리이까?”(1)에 주어질 수 있는 답변은 3가지다. 첫째는 아무도 없다. ,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부패하여,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할 때’(21:2) 그리고 하늘로부터 거룩한 예루살렘이 내려올 때’(2:10), , 마지막 심판 때에,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21:8)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가능한 답변은 모두이다. , 모든 인간이 주의 성산과 장막에 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를 주셨기 때문이다(3: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악한 죄인들의 기대와 답변이다. 셋째로, 비록 이 세상에서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자기 죄를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 용서를 받아 주의 장막주의 성산에 살 수 있다는 답변이다.

당연히 야훼, 하나님을 믿었던 이스라엘 사람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세번째 답변에 동의할 것이다. 시인은 스스로, 자신이 열거한 삶의 모습(3-5)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러한 것을 요구한다면,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이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리이까?”(1) 반문(反問)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시인은 이 반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죄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25:7) 라는 기도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이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리이까?”(1)는 시인의 반항적 혹은 회의적 질문이 아니라, 오히려 은총의 간구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