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사상사

* 첨부파일에는 각주까지 있습니다.


제9강  초기 한국 개신교회와 성경의 영감론


   초기 한국 개신교회의 성경영감론은 어떠했을 까요?

   초기 내한 선교사님들이 주장한 성경의 영감론은 축자영감론(逐字靈感論: verbal inspiration)이었을 까요? 이유가 무엇이었든 한국 개신교회와 성경의 영감론은 분명 연관성이 깊습니다. 한국 보수진영의 교회에서 경계하는 두 가지가 있다면 첫째는, ‘자유주의 신학’이요, 둘째는 ‘용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초기의 선교사들이 전하여 준 12신조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 까요? 12신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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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는 ‘정확무오한’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장로교회의 헌법들에서 드러나는 12신조의 ‘정확무오한’이라는 말은 원래의 신조가 아니라 후대에 첨가하여 채택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 내한 선교사님들이 공포한 12신조의 성경론은 엄격한 문자적 영감론이나 문법적 무오류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초기 내한 선교사님들이 강조한 웨스트민스터 소(小)요리문답의 성경관은 어떨 까요? 초기 내한 선교사님들의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기는 어려워 일단은 1647년 브리타니아에서 만든 웨스트민스터 소(小)요리문답서의 제2문과 답 그리고 제3문과 답을 따르니, 성경의 영감은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감리교회에서는 어떠했을 까요? 감리교회의 종교강령(1784) 제5조와 6조를 따라도 성경의 영감론은 주요 주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웨일즈에 있던 칼빈주의 감리교회의 신조(1823)는 다를 까요? 그것도 참고해 보십시다:


2. Of the Scriptures. 

The Holy Scriptures - that is, the written word of God, the book commonly called The Bible - consists of all the book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e books of the Old Testament are Genesis, Exodus, Leviticus, Numbers,(중략) 


The books of the New Testament are the gospels according to Matthew, Mark,(중략)  


All the Scriptures - that is to say, the book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 are the word of God. From him they came; they were spoken by holy men of God; they contain a full, sufficient, and perfect revelation of the mind and will of God, concerning all things that are necessary to be know for our salvation (a); and they are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obedience. The truths which they contain respecting God and the perfections of his nature are so exceedingly broad and deep, that no one could have revealed them, except him who has a perfect knowledge of himself (b); the godliness and self denial of the writers, the purity and holiness of all the truths contained in the Scriptures, the consistency of all the parts, though written by various persons and in various ages of the world (c), the continued preservation of the Scriptures, though the strongest authorities on earth have assailed and sought to destroy them, the fact that it is their main design to manifest God's greatness and glory (d), their authority and influence over the hearts and lives of men, and the superiority of those nations which have had the Scriptures, in every age of the world, over other nations, in morals, knowledge, and all else that adorns humanity, - all these things prove beyond a doubt that the infinite God is their author (e).   


Besides, we have no grounds for thinking that either men or angels are the authors of the Holy Scriptures; we cannot suppose that bad men, in early times, were the authors of the Scriptures, without supposing also that evil had changed its former nature; and it is very certain that evil spirits never fashioned these weapons which are destined to subvert their kingdom in the hearts of men; and it would not be consistent with the holiness of the elect angels, nor with the holiness of godly men, to utter a lie in the name of The Lord of Hosts; it is, therefore, abundantly evident that the Scriptures come from God, and from no other source (f).   


   이를 따르면 성경론이 강조되어 있음이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무오류성에 연관된 구절도 있군요. “they are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obedience.”라고 하였군요. 그러나 이 말은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규범에 있어서 오류가 없다’라는 뜻이지, 성경이 철자하나조차도 틀림이 없다는 말은 아니잖아요. 웨일즈의 칼빈주의 감리교회의 신조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했음은 뚜렷합니다. 그러나 그 성경의 글자하나 소리 하나 점하나까지 신경을 쓴 것 같지는 않군요. 

   1900년 「신학월보」의 창간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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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는 성경의 영감론이 없군요. 그렇다면 1901년 10월 3일자 그리스도 신문에 발표된 “교회와 정부 사이에 교제할 몇 조건”에서는 무어라고 했을 까요?


3. 대한 백성들이 예수교회에 들어와서 교인이 될지라도 그 전과 같이 백성인데 우리 가르치기를 하나님 말씀 거스림 없이 황졔를 충성으로 섬기며 관원을 복종하며 나라법을 다 순종할 것이오.


  여기에는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이라는 구체적 언급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위 12신조의 원조라고 하는 인도장로교회의 신조(1904)의 서문(Preamble)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 까요? 인도장로교회의 신조(1904)의 서문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웨일즈의 칼빈주의 감리교회 신조, 도르트 신조를 언급합니다. 여기에는 스위스 일치신조(1675)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조사적으로 하면 ‘스위스 일치신조(1675)’가 이른 바 축자영감론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데, 인도장로교회의 신조의 서문에서 참고한 전통의 신조들 중에는 스위스 일치신조가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 (1907)’에서는 축자영감론에 기초한 성경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12신조에 대한 주장 중 한 가지는 12신조의 성경론이 ‘엄격한 칼빈주의’나 ‘근본주의’로 이해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해입니다. 12신조는 엄격한 예정론이나 근본주의적 성경관을 갖지 않습니다. 12신조는 감리교적인 내용도 반영한 이채로운 신조로 보일만한 장로교회의 신조이며, 소위 ‘에큐메니컬’적 신조입니다. 그러나 후대에는 이 신조가 오해되었던 경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초기 한국 개신교회의 신학의 모체가 미국 정통주의의 대가인 찰스 핫지로부터 오지 않았겠나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곽안련의 <<교회정치문답조례>>가 J. A. 핫지의 <<교회정치문답조례>>로부터 왔기 때문에 그런 추론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박형용 목사님은 미국에서 공부하시고 오셔서 소위 ‘구(舊)프린스턴’의 강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라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종말론에 있어서만큼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다음과 같은 논문을 따르면 박형용의 종말론은 전(前)천년주의 적이었으나 미국 정통주의의 대가 찰스 핫지의 종말론은 후(後)천년적이라는 것입니다:


정태진, “박형용의 전천년설 연구: 찰스 핫지의 후천년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계명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1).


   일반적 평가는 19세기 당시의 선교사님들은 전천년주의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강하게 일어났던 운동이 전천년주의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천년주의가 미국의 정통주의의 영향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내한 선교사님들은 복합적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선교사님들 간에도 생각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또 선교사님들은 선교 현지의 상황을 고려하여 유동적이셨습니다. 예를 들어 곽안련 선교사님만 하더라도 <<교회정치문답조례>>를 옮기실 때 J. A. 핫지의 책을 그대로 옮기지 아니하시고, 부분적인 수정을 하셨는데, 하물며 내한하신 모든 선교사님들이 무조건 융통성 없이 한 가지만을 고집하셨을 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한 선교사님들의 자료를 검토할 때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내한 선교사님들의 성향이 전천년주의 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미국의 개혁·정통주의와 동일하다’라고 하는 식의 주장은 반드시 타당하지만은 않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최근에 발표된 논문을 따르면 종말론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한다면 전(前)천년주의는 예수님의 재림이 있은 후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것이고, 후(後)천년주의는 천년왕국이 먼저 있고, 그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일반적 구분에 의하면 전천년주의는 개인의 영혼구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 사회복음적인 내용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천년주의는 사회변혁적이고, 소위 ‘사회복음’에 관심이 크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월터 라우센부쉬와 같은 ‘사회복음운동가’가 바로 후천년주의자 입니다. 그런데 미국 정통주의의 대가인 찰스 핫지는 후천년주의, 즉 사회복음 운동적이라는 주장이 최근의 논문에서 밝혀졌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근본주의와 정통주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정통주의 자라고 하는 17세기의 유럽 정통주의자들의 주장을 본다면 사회참여적입니다. 17세기의 예배모범이나 신조들이 과연 개(個)교회주의적일 까요? 소위 보수 개혁신학의 유산을 갖고 있는 네덜란드의 개혁교회가 사회참여와는 동떨어져 있을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의 개신교회는 정통주의 신학도 연구를 해야 합니다. 


   곽안련의 자료를 따르면 개신교 선교의 초기라고 할 수 있을 1912년 예수교 장로회의 총회 창립 시 총회에 참석한 선교사님들의 수는 44명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모두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분들이실 까요? 그리고 그 이후에 한국으로 들어오신 선교사님들은 없었을 까요? 초기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선교사님들의 의견을 모아야 했을 텐데, 그 시대 장로교회의 중요 신조는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소(小)요리문답서였습니다. 그렇다면 12신조가 엄격한 칼빈주의였습니까? 전술한 바를 따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 근본주의적 성경관을 가르칩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서는 미국에서 근본주의가 태동되기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미국의 교회사적 사정 때문에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경우 판본에 따라 차이가 조금씩 생기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트민스터 문서들을 근본주의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미국 교회사에서 일어난 부흥회나 전천년주의 운동은 그 당시 선교사님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통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내한 선교사님들의 주장은 어떠하였을 까요? 그리고 내한 선교사님들은 자신들이 채용한 신조와 교리문답에 철저하였을 까요? 이 문제는 일괄적으로 뭉뚱그릴 수 없을 만큼 성경관이라는 하나의 주제에서는 차이가 생길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주의할 것은 영국의 청교도와 미국의 청교도가 동질적이었는가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청교도는 전천년주의였을 까요?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뚜렷해 보이는 점은 초기 내한 선교사님들 중 신조학을 전공한 신학자들이 몇 분이었는가하는 점입니다. 즉 17세기 유럽의 정통주의가 그대로 한국으로 이전될 수 있었을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론과 실제와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17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졌지만 12신조는 인도에서 받아들인 것을 한국에서도 수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미루어 짐작할 만한 일이 있습니다. 초기 내한 선교사님들은 복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전천년주의는 정통주의가 아닙니다. 유럽에서 정통주의의 시대에 만들어졌던 신앙고백이 곧바로 미국의 전천년주의로 이어졌을 까요?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즉 미국이라는 복합적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미국의 특수성이 있어서였겠지요. 그렇다면 한국은 예외였을 까요?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을 겁니다. 적어도 선교사님들은 한국이라는 선교 현지의 상황을 감안하였을 겁니다. 그리고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호주에서 배운 신앙을 한국에 와서 상황 화 시켰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를 따르면 평양신학교는 구(舊)프린스턴, 즉 미국 정통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미국의 정통주의 신학이라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한 가지 뚜렷한 것은 내한 선교사님들은 프린스턴 신학교의 교수님들이 아니었습니다. 프린스턴에서 배울 수는 있었지만 전문신학자는 아니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그 당시 한국인들의 교육수준입니다. 과연 그 시대의 신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신학교육을 소화해 낼 만 한 능력이 있었을 까요? 그래서 신조상의 특성도 중요하지만 실질적 문제는 현지의 사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2신조라는 에큐메니컬적 신조를 소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정신을 얼마만큼 이해하였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전해진 원래의 12신조의 성경관은 엄격한 칼빈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다수의 한국인들은 후에 ‘정확무오한’이라는 말을 넣어야 보다 더 마음이 편한 분들이셨습니다. 즉 한국의 토양에서는 두 가지를 다 고려해야 합니다. 선교사와 교인들입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경험했을 실질적 체감이 중요한 셈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 20세기 초 한국의 신학생들은 17세기 유럽의 신학생들보다 신학적 수준이 더 낮았을 듯합니다.


     또 하나 고려할 것은 기록으로 남은 그 12신조와 평양신학교의 교육 내용이 얼마나 동질적인지가 관건입니다. 아마 내한선교사님들은 12신조의 전문가는 아니었을 듯합니다. 신조는 아무나 쓸 수 없을 만큼 신학적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다만 우리에게 전해진 원래의 12신조는 엄격한 칼빈주의로 분류되기 힘든 내용입니다. 그러나 후대에 첨가된 ‘정확무오한’이라는 말은 초기 내한 선교사님들이 채택한 그 신조를 오해하게끔 만들 만한 사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