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팸플릿

그리스도교에서 "믿음"은 가장 중요한 신학적 혹은 신앙적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예컨대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는 개신교의 칭의론을 비롯하여, "믿고 기도한 것만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도에 관한 것에 이르기 까지, '믿음'은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주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다.

그런데 '믿음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을 '믿음'을 인간의 능동적인 행동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믿음 개념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단지 능동적인 선한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선한 행위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선한 행위와 믿음이 없는 사람의 선한 행동이 겉으로 보기에는 동일한 것 같아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우선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언약)"을 진리로 수용하는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진리로 수용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수용은 단지 심리적인 긍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용을 일상의 삶 속에서 행동으로 표현(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례를 우리는 아브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아브람은 나이가 늙었다. 그의 아내 사래도 경수가 끝나 아기을 잉태할 수 없다. 그 때에 야훼 하나님은 그들 부부에게 아기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 약속을 아브람은 수용하였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야훼 하나님에 대한 '믿음', 곧 '의'라고 성경은 증언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도"(창 15:6) 왜냐하면 그는 야훼 하나님께서 능히 그러한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말씀, 곧 약속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못 믿는다는 것은, 그 자신을 못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도 처음에는 야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지만, 그 약속의 실현이 지연되니까. 그 약속을 회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사래의 말을 들어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는다. 그래서 그는 약속된 자손을 이삭을 얻은 후, 모리앗 산에서 다시 이삭을 바치라는 믿음의 시험을 받는다. 아브람이 이삭을 죽이려 하는 순간, 야훼 하나님은 이삭에게 손을 대는 일을 멈출 것을 명하시고,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 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과 별고 같고, 바닷가에 모레와 같이 하리라"(창 22:17) 말씀하신다. 이것은 야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처음 약속하신 말씀과 동일하다. 

따라서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아브람이 야훼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해 주신 말씀을 처음에는 믿었지만, 그 다음에 그 믿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아브람이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지를 하나님께서 시험하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람이 야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단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행위이다. 이처럼 믿음은 단지 말로만 믿는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3:26)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이 야고보서의 이 말씀이, 믿는 자는 선행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 말씀은 오히려 네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 믿음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라는 말씀을 이해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여러가지 비유로 설명해 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믿고 수용하고, 그 수용하는 바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통하여 그가 약속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증명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을 약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자는,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런 점에서 이 땅에서 자기만 살먹고 살고자 하면서, 이 땅에서 만고강산 살고자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믿지 못하는 것이요,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이며, 성경의 모든 증언을 믿지 못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바로 "약속"(언약), 혹은 "계약"을 마음으로 수용하고, 그 수용하고 있음을 삶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