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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2613


칼 바르트의 ‘만인화해론’, 결국 ‘만인구원론’인가?

김진영 기자 입력 : 2018.05.22 19:50
  

김명용·김영한 박사, 「교회교의학」 완역 학술대회서 발제

칼 바르트
ⓒ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완역 출판 기념학술대회 자료집 표지 캡쳐
케리그마신학연구원(원장 김재진)이 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완역 출판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지난 19일 연세대학교 루스채플 원일한홀(101호)에서 개최했다.

이날 김명용(전 장신대 총장)·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박사가 주제강연 했고, 칼 바르트 「교회교의학」의 각 권(총 13권)의 번역자들이 직접 참여해 그 주제와 핵심 내용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스도의 권위 위에서 성경의 권위를 살린 신학"

먼저 '바르트 신학의 특징'을 제목으로 주제강연한 김명용 박사는 "바르트는 매우 방대한 양의 글을 썼기 때문에 바르트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며 "그의 주저서인 교회교의학 13권만 읽으려 해도 정독을 하려면 수년이 걸릴만큼 방대하다"고 했다.

김 박사는 "바르트를 이해하는데 또 하나의 큰 어려움은 바르트의 신학이 그의 신학이 성숙하면서 크게 변하고 발전했다는 점"이라며 "세계에 널리 알려진 로마서 강해 제2판의 신학과 그의 성숙한 신학을 대변하는 후기 바르트의 신학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바르트를 언급하는 것은 바르트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못 된다"고 했다.


이 중 김 박사가 가장 먼저 언급한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에 대해 그는 "바르트 신학의 위대성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성경의 절대 권위를 주장하기 어려운 시대에) 흔들리는 성경의 권위를 회복한 데 있었다"며 "바르트가 성경의 권위를 회복한 결정적 기둥은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했다.
이어 김 박사는 칼 바르트 신학의 큰 주제를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하나님 말씀의 신학 △하나님 주권의 신학 △하나님의 은총의 신학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신학 △만인화해론으로 정리했다.

김 박사는 "바르트는 권위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둔 신학자였다. 바르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기계시이고 영원한 진리"라면서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 권위의 중심이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톨릭 교회라면,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은 권위의 중심이 무오한 성경이었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18세기 권위의 중심은 성경에서 이성으로 옮겨갔다. 20세기 바르트의 신학은 권위의 중심을 하나님의 자기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고 이 근거 위에서 성경의 권위를 살린 신학이었다"고 했다.

특히 김 박사는 '만인화해론'에 대해 "바르트의 만인화해론은 객관적 화해론이다. 이 객관적 화해론이라는 말은 주관적 화해론이라는 말과 구별되는 개념인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모든 인류의 죄는 객관적으로 화해되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즉 인간 편의 믿음이나 주관적인 응답과는 관계 없이 예수께서는 객관적으로 만인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뜻이다. 따라서 만인의 죄는 객관적으로 해결되었다. 전통적인 화해론은 주관적 화해론이었다. 즉 우리가 믿는 순간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는 의미였다. 바르트의 객관적 화해론은 엄청난 충격을 일으켰고 이내 거대한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했다.

김 박사는 "논쟁의 핵심은, 객관적 화해론은 결국 만인구원론이 아니냐 하는 것"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바르트의 답은 자신은 만인화해론을 주장하는 사람이지 만인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바르트에 의하면 화해와 구원은 다른 사건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르트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고 한다. 아래와 같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의 어떤 사람이 나치를 피해 알프스의 산으로 피했을 때, 알프스 산속의 삶은 매우 고달팠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나치가 망하게 되었다. 바르트에 의하면 나치가 망한 사건은 십자가의 사건이다. 십자가에서 마귀는 망하고 자유와 해방이 오게 되었다. 이 십자가의 사건이 화해의 사건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나치는 망해도 아직 알프스로 피한 사람에게는 구원이 온 것은 아니다. 이 사람에게 구원이 오려면 누군가 나치가 망한 기쁜 소식을 알프스로 찾아가서 전해야 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이 전하는 사건이 선교이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을 수 있다. 구원은 이 기쁜 소식을 듣고 이를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 나치가 망한 기쁜 소식을 사실로 믿고 자유와 해방이 물결치는 오스트리아의 도시로 내려올 때 이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우리는 화해와 구원 사이의 시간에 존재한다 이 화해와 구원의 사이의 시간이 교회의 시간이고 선교의 시간이고 성령의 시간이다."

칼 바르트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케리그마신학연구원
"만인구원론의 길을 열어 놓았다"

두 번째 주제강연자로 나선 김영한 박사는 '바르트와 현대신학-현대신학에서 바르트의 공헌과 남긴 문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박사는 "바르트는 현대신학에서 한편으로는 정통주의 신학이 지닌 교리적·신학적 경직성과 신학적 폐쇄성을 극복하고 다른 편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의 시대적 영합과 교리적 혼합적 시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고 했다.

그는 "그리하여 바르트 신학은 한편으로는 교회와 신학의 시대적 개방성과 책임을 수행하고 다른 편으로는 교회와 신학의 정체성을 지키고자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했다.

김 박사는 칼 바르트가 현대신학에 가져다 준 신학적 공헌으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인 문화기독교주의를 해체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회복 △독일 나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기독교회의 정체성 수호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기독교의 유일성 수호 △정통신학의 수구적 보수주의에 대한 현실 비판적 의식 △하나님을 경외하는 열정으로 꼽았다.

그는 칼 바르트 신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도 했다. 특히 앞서 김명용 박사가 '만유화해론'으로 설명하기도 했던 것에 대해 김 박사는 "1953년 이후 바르트의 화해론은 1936년과 1942년의 예정론과 비교할 때 하나의 중요한 신학적 변천을 보여주고 있다"며 "그것은 하나님의 화해사건은 인간의 믿음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배타적으로 실행한 은총의 사건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1936년과 1942년의 예정론에서는 바르트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믿음과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으로 이해했다. 이 사건은 선행하는 하나님의 행위와 이에 응답하는 인간의 믿음이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며 "그러나 1953년의 화해론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객관적 화해론 내지 화해론적 객관주의"라며 "바르트는 객관적 화해론을 발전시키면서 하나님의 화해행위와 인간의 믿음행위를 구별시킨다. 화해는 인간과 관계없는 하나님의 독자적 행위이다. 믿음은 단지 하나님의 극단적 은총에 대한 인간의 겸손한 순종이다.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응답이지만 그것은 철저히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그러나 이러한 바르트 교의학에 있어서 믿음은 단지 인간의 자유스러운 행위에 근거할 뿐 종말론적 심판에 대한 진지한 결단을 수행하는 진지성과 종말론적 지평을 상실하고 있다"며 "이러한 후기 바르트의 사상은 극단적 칼빈주의 일면을 나타내고 있다. 극단적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복음 전파의 필요성, 개인의 신앙적 결단 윤리적 책임, 전도행위나 성화의 노력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바르트는 칼빈의 예정론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보편기독론적 일원예정론으로 수정함으로써 만인화해론을 천명하고 만인구원론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도 지적했다.

김 박사는 "바르트는 교의학에서 하나님의 화해 사건의 객관적인 사건인 만인화해론과 하나님의 구원의 주관적인 사건인 만인구원론을 구분하면서 만인구원론을 천명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이러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화해를 알고 있는 자요, 불신자는 화해를 알고 있지 못한 차이에 불과하며 구원의 신분에 있어서는 실제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의 화해론이 믿음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극단적인 은총과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그리하여 그의 신학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만인구원론으로 귀결 되는 것"이라며 "그가 1936년의 예정론에서 인간의 회개와 믿음과 순종을 강조한 성찰은 정통신학적이었다. 그런데 그가 후기(1942년)로 이 견해를 포기 하면서 회개 믿음 순종과 상관없는 객관적 화해론으로 빠진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그를 은총일원주의로 나가게 했고 그의 후기 교의학의 체계가 만인구원론으로 구조화 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박사는 "바르트는 성경 계시에 충실하여 만인구원론을 교리화하지 않았고 인간의 구원을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에 맡겼다. 이 점에서 그는 여전히 성경적 신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며 "정통신학은 신정통신학을 자유주의라거나 이단적이라고 비난하기보다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교회의 전통을 함께 지키는 신학적 아군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칼 바르트
▲학술대회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맨 앞줄 오른쪽 두 번째, 다섯 번째가 각각 김명용·김영한 박사 ⓒ케리그마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