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장 강해

[본문] 약 2:1-26

 

1. [차별대우하지말라]: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차별대우의 예증]: 2-3절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현상은 오늘 현대 교회 안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혹시 자신은 이러한 마음으로, 그리고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 시간에 앉아 있지는 않는가?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의 의도도 차별대우의 결과]: 5-7절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사랑의 법,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랑으로 남을 용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것이 율법의 완성이다.

 

[하나님의 말씀]: 8-9절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사랑의 법은 모든 법에 적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율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법과 달리 하나님의 법에는 경중이 없다.

 

[율법의 형평성과 균등성]: 10-11절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참된 그리스도인, 곧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는 사람은 모든 율법에서 자유롭다. 그것을 모든 율법을 행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정신, 곧 사랑을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율법 행위는 인간의 의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혹자는 자기의 선을 자랑하기 위해서, 혹자는 어떠한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러나 참 사랑의 실천은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법: 자율법Autonomie]: 12-13절 특히 ‘사랑의 법’대로 행하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위’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십자가’였던 것과 같다.

 

2. [행위로 표현된 믿음]: 참된 사랑은 말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표현되는 것이다. 행위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은 공허한 말 만의 믿음이다. 그러한 믿음은 귀신들의 믿음이다.: 14-26절

[한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행위로 표현된다]: 14-19절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행위로 표현된 믿음에 대한 예증]: 20-25절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결론]: 26절: 믿음은 말에 있지 않고 행위로 표현되어야 한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3. [문제제기]: 십자가 위의 강도 중 한 사람은 무엇으로 구원을 받았는가? <- 긴급한 상황에서는 회개(자기 죄에 대한 시인)와 고백도 행위에 속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은 ‘마음’에서 이미 범죄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자기 자신은 아무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러나 평소 회심만으로는 참 회개라고 볼 수 없다. 참 회개는 삭개오처럼, 자신이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로 되물어 주는 것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는 말씀은 인간의 구원은 全人救援이다. 따라서 몸에 상당한 삶으로서의 ‘사랑’이 행함이 없는 것은 참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지 않고 말씀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하였다면, 그에게 부활이 있을 수 있었을까?